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들.

도마담 2017. 8. 29. 07:04

어둠과 안개 속을 헤매는 빛 -1950년대의 미국 느와르 필름들을 흥미롭게 보았다. 느와르 영화들을 보면서 이들 영화보다 늦은 시기에 출현했고 작품의 결도 사뭇 다르지만 올해 초에 상영된 클로드 샤브롤영화들로 자꾸 돌아가게 된다.

  *참고영화: 클로드 샤브롤 <부정한 여인>1969,<도살자>1970,<붉은 결혼식>1973,<플레져 파티>1975, <베티>1992.

 



치정과 범죄와 예술.


"에로티즘은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 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건드린다. 정상 상태로부터 에로 상태로의 추이는 불연속적 질서, 또는 형태적 존재의 상당한 와해를 전제한다."    

    - '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에서-

 

치정과 범죄가 결합하면 범죄가 되고 범죄와 예술이 결합하면 예술이 되지 않을까. 치정이 경계를 벗어나면 범죄이고 범죄가 승화되면 예술이다. 여기서 억울한 건 치정과 범죄일 수 있다. 하지만 치정과 범죄와 예술은 서로 닮아있다. 그렇게 때문에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 동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셋은 관습화된 룰을 깨고 위반의 지대로 넓혀나가는 폭력성을 지닌다. ‘클로드 샤브롤많은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본능적 속성을 깊이 파고들어 노골화했다는 점에 있었다. 이면의 치정이 표면의 범죄가 되어가는 추이를 긴장감 있게 지켜보면서 몰입하게 한다.

 

 


사랑보단 욕망, 욕망보단 본능.

 

도살자, 붉은 결혼식, 부정한 여인 -'클로드 샤브롤'의 몇몇 영화는 제목부터 불길하다. 그의 영화들은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탐미가 우아하게 펼쳐지는 낭만적인 기대를 품기에는 욕망이 애초부터 과감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 인물들의 욕망이 옹호되지도 단죄되지도 않는 모호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느와르 영화와 달리 욕망을 위해 범죄를 계획하고 살해를 자행하면서 펼쳐지는 추격전의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부정한 여인>에서 여주인공은 무료한 결혼생활을 달래고자 일상에서 일탈했을 뿐이며 남편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내의 남자를 만나러갔다가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여 불시에 살해하게 된다. <붉은 결혼식>은 숲속에서 다급한 정사를 벌이는 중년 연인들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하다. 그들은 욕망을 욕망코자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기보단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삶의 범주를 벗어나기보단 위장하면서 범죄가 된다. 본능의 목표는 본능의 지속이다. 본능을 유지하기 위해 인물들은 방해물들을 소거시키려고 하고 제거해나간다. <부정한 여인>에서 남편이 정부의 시체를 옮기는 과정, <붉은 결혼식>에는 각자의 배우자를 살해하는 경로를 찬찬히 보여준다.


섹스와 살해 장면 없이 본능적 충동의 분위기로 가득 채운 영화가<도살자>였다. 여교사와 정육점남자는 본능대로 움직이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감정이 일상에서 조금씩 불이 붙기 시작하고 마을 곳곳에서는 피를 뿌리는 살해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여교사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도 예상대로 범인을 알아채기에 이른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억제할 수 없는 살인본능을 말하는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육체관계를 보상하려는 피에 대한 충동을 말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드러날 수밖에 없는 억압된 본능은 삶의 표면을 뚫고나와 붉게 물들인다라이터의 동선 그리고 단서. 영화<도살자><부정한 여인>은 본능의 흐름이 다다를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파국과 함께 여배우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클로드 샤브롤영화의 매혹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부르주아/가부장제의 틀.

 

얼핏 클로드 샤브롤영화들은 다중적 관점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백인/유럽/중산층/남자의 기반을 가진 클로드 샤브롤은 다중적 관점을 지나 제3의 지대에서 상황과 인물들을 바라본다. 강자의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가 마치 관찰자처럼 부르주아 가정의 틀 안으로 그들의 삶과 욕망을 파헤치고 들여다본다는 면에서 그의 영화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부르주아라는 물적 토대에 놓인 본능은 매혹적인 관능으로 다가온다. 부르주아 계급 내부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은 인테리어 의상 헤어스타일 음식 등의 일상문화까지 상당히 디테일하게 담아내면서 욕망의 먹이사슬을 중심으로 한 인간본능의 생태계를 피라미드 형태로 펼쳐 보인다. 최종승자는 부르주아 남성으로 보이지만 본능의 게임에 휘말리게 되면서 파멸한다. 영화<부정한 여인>의 남편은 사람을 고용해 아내를 추적하고 결국은 살인자가 되고 그의 아내와 아이는 그가 만든 정원에서 살아남는다. 영화<플레져 파티>는 가부장이라는 틀 안에서 짓밟히고 으깨어져 살해되는 여성의 말로를 보여준다. 부르주아 가족제도에 유입되어 죽음을 맞는 출신이 다른 여자. ‘클로드 샤브롤은 본능의 속성에 달라붙어있는 계급적인 측면을 절대 간과하지 않는다. 타자의 노동으로 축적된 부르주아의 물적 기반은 본능의 속성을 보다 탈취적이고 비열하고 변태적으로 보이게 한다. 영화<붉은 결혼식>에서의 정계에 있는 남편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 나서 그들에게 정치적인 거래를 제안한다. 직관적인 성적 본능이 점차 범죄로 변해가는 과정에 정치적 욕망으로 뒤틀린 본능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살해로 이어진다. 영화<플레져 파티>는 보다 적나라하다. 부부는 자유로운 성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관계가 문란하게 변질되면서 질투와 소유욕의 극단이 드러난다. 부르주아/가부장이라는 틀 내에서 본능의 힘은 어떻게 이동하고 배치되는가.


비교적 후기작에 속하는 영화<베티>에서의 여주인공 베티의 본능은 보다 주도적으로 보인다. 부르주아 출신이 아닌 베티는 부르주아 남자를 좇아 가정을 꾸리지만 그녀의 본능이 부르주아/가부장의 틀을 넘나들게 되면서 그녀는 추방된다. 우연히 만난 유한부인의 정부를 자신의 연인으로 가로채면서 그녀는 본능의 먹이사슬 꼭대기로 간다. 연인을 잃게 된 부르주아 여성의 배역을 배우 스테판 오드랑이 맡았다는 사실이 사뭇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베티는 어항 속의 금붕어들을 바라본다. 이제야 그녀는 어항 같은 삶 속으로 구원을 받은 걸까. 혹은 '클로드 샤브롤'이 그녀를 금붕어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녀들은 팜므파탈인가.


클로드 샤브롤영화들에 남성적인 시선이 배어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남성감독인 그는 남성들에 의해 대상화되어 있는 부르주아 가정에 속해 있는 여성들을 매혹적으로 채색하는데 공을 들이면서도 그녀들에게 덧씌워진 이중의 굴레를 가차 없이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클로드 샤브롤' 영화 속 여성들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플레져파티>처럼 살인을 당하거나 <부정한 여인>이나 <도살자>, <붉은 결혼식>에서처럼 살인을 침묵하고 방조하거나 살해에 동참한다. 남성들은 우발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스스로 살해를 저지르다가 수갑을 찬다. 그러면 클로드 샤브롤영화의 여성들은 팜므파탈인가.

클로드 샤브롤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관습적인 의미에서 팜므파탈의 속성을 보인다. 하지만 요부의 이미지를 보이는 느와르적인 팜므파탈이나, 잔인한 매혹의 신화적인 팜므파탈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혹은 타자를 자신의 거울로만 인식하면서 수단시하는 소시오패스적이고 악성 나르시시스트적인 팜므파탈하고도 그 궤를 달리한다. ‘클로드 샤브롤영화 속의 그녀들은 그저 존재한다. 그녀들은 부르주아 계급에 잘 길들여져 있으며 부르주아 남성의 시선 안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그 자체의 매혹으로 남성들을 끌어당긴다. <부정한 여인><도살자>의 여주인공은 본능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나 계급적 기반을 버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붉은 결혼식>에서도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 도주하지 않는다. ‘클로드 샤브롤이 그린 부르주아 가족 내의 여성들은 연약해 보인다. <플레져 파티>의 아내가 남편의 발을 핥아주는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부정한 여인>에서의 아내는 영리한 편이다. 똑똑한 부르주아 여성은 자신의 매력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자신의 기반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를 안다. 아내는 남편과 정부의 욕망을 장악하고 그들 스스로 움직이게 하면서 기반도 잃지 않는다. 그녀들은 질주하지 않는다. ‘본능계급그리고 여성이 결합한 클로드 샤브롤만의 팜므파탈은 매혹과 위험 사이를 줄타기 한다.

 

 


'클로드 샤브롤' 영화들의 매혹.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세계를 몇몇 영화만을 보고 얘기하는 것은 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는 영화매체의 실험성을 탐구하는 가능성의 지대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들은 통속적인 드라마로 출발하는 듯하지만 인간 본능의 속성과 동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스릴러로 완성해 낸다. 무엇보다 클로드 샤브롤감독은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사회의 속성을 과감하게 표출해냈다는 점에서 놀랍다. 부르주아 일상의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가운데 풍부한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본능의 양상을 훨씬 기만적이고 기괴하게 펼쳐낸다. 그의 영화가 완결된 구조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욕망이 어긋나기도 하고 때로는 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각적으로 개입하여 상상하게 하는 재미도 있다. 은밀하지만 격렬한 본능인 남녀 간의 치정을 중심으로 어두우면서도 본질적인 인간의 본성을 잔인할 정도로 탐구한 감독을 꼽는다면 단연 클로드 샤브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