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영화속 얼굴.
<헝거>/감독:스티브 맥퀸/영국,아일랜드/2008.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 영국정부에 단식으로 저항했던 실존인물 '보비 샌즈'. 그는 1981년 3월1일부터 단식을 시작해서 66일 만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교도소 복도바닥을 오랫동안 물청소하던 교도관, 점차 사위어가는 '보비 샌즈'의 몸. 영화는 생각하지 않고 온몸으로 존재한다. 존재함으로 응시하고 응시함으로 생각하게 한다. 배우 마이클 패스빈더의 얼굴이 던져주는 '보비 샌즈'라는 화두.
<무셰트>/감독:로베르 브레송/프랑스/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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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무셰트'의 무표정은 외부에 대한 지속적인 반응의 축적 - 마치 클로즈업처럼 인장이 박힌 소녀의 얼굴이 독자적인 동선을 만들어나가면서, 끌고가는 소녀의 쇠구두 소리가 동정으로 가장한 경멸의 시선을 밟고 지나가면서, 영화는 끝내 소녀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놀이동산 범퍼카의 스파크 속에서 소녀가 해맑은 웃음을 보일 때, 호숫가에서 도움의 손길을 잠시 바라볼 때, 한 아이가 감당해야했던 가혹한 고통을, 영화는 무셰트의 얼굴로 위대하게 담아낸다.
<사울의 아들>/감독:라즐로 네메스/헝가리/2015.
"우린 예전에 죽었어." -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죽음이 예정돼 있는 아우슈비츠 시체처리반 '존비코만도'인 주인공 '사울'은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들의 무덤을 만들어주기 위해 랍비를 찾아 헤맨다. 영화는 수심깊은 골과 의지의 둔덕으로 새겨진 '사울'의 얼굴로 남는다. 윤리를 지나 미학을 지나 '사울'의 얼굴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익명의 얼굴들 아들들이 있다. 그들을 한 명씩 호명하여 제를 올리고 싶은 바울이 될 수 없었던 사울이 바치는 아우슈비츠의 진혼곡이다.
<산쇼다유>/감독:미조구치 겐지/일본/1954.
"주시오..........안주..........." 아이들이 나뭇가지와 풀을 베러간 사이, 날 저무는 산 속에서 엄마는 아이들을 애타게 부른다 - 이 장면이 얼마나 슬픈지는 처음 볼 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고운 얼굴에서 기구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매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머지 않은 일이었다. 바닷가에서 섬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바람이 되고 노래가 되어 뭍으로 떠돌아 다닌다. 세월로 퇴색한 엄마의 얼굴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애절한 그리움으로 신파를 넘는다.
<스포트라이트>/감독:토마스 매카시/미국,캐나다/2015.
2002년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은 보스턴지역 약 90명의 카톨릭 사제들이 자행한 수십 년에 걸친 아동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하였다. 실화의 영화화라는 호기심 이상으로 배역들의 팀워크를 잘 소화한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크 러팔로'가 아니라 그들 팀이었다 - 자기 자리에서 마땅히 해내야할 몫, 밝혀내야할 팩트. 숨길 수 없는 분노와 진지한 표정은 평균의 얼굴과 균형의 팀워크다.
<우게츠이야기>/감독:미조구치 겐지/일본/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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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미소와 섬뜩함 사이에 머물러 있는 만가지의 오묘한 우주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은 죽음의 서곡 - 칠흑 같은 무덤으로 정지해버린 과거, 가문의 영화로움. 이승을 떠도는 풀지 못한 예술의 정염. 야생의 순진한 먹잇감을 발견하는 순간, 그건 오랜 가뭄 끝에 해갈, 긴 어둠의 터널 막바지의 한 줄기 빛. - 온천에서 들판으로 두루마리처럼 펼쳐지는 매혹의 환영에서 깨어날 때 만난 황폐한 얼굴, 유령의 집.
<룸>/감독:레니 애브라함슨/아일랜드,캐나다/2015.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터질 것 같은 순간의 아이의 얼굴 - 둘둘 말린 카페트가 펼쳐지면서 만난 하늘은 얼굴을 스치는 바람, 어쩌면 차가운 공기, 확 트인 시야. 골목을 누비는 트럭을 따라도는 가없는 벅찬 우주여행. 태어나서 한 번도 방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다섯 살 '잭'이 보던 하늘은, 언제나 천장 위 조그만 창문, 동화책 속 하늘색, 아니면 텔레비젼 화면에 갇혀있던 구름이었지. 앞으로 엄마와 함께 살아가야할 넓은 룸에서, 하늘을 보았던 그 순간만큼은 가끔씩 떠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