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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누드모델

도마담 2016. 9. 19. 21:25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창작과정을 담은 영화는 어떤가. 그것도 예술가와 누드모델이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뜻 영화<>은 풍경을 담은 수채화가 스쳐지나가듯이 영화<누드모델>은 전투적인 정밀화를 가까이서 함께 하듯이 보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예술에 대한 여러 질문들과 풀릴 수 없는 화두였다.

 

                                                             영화 <봄>/감독:조근현/한국/2014

예술가와 누드모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작이 같았고 창작과정을 길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플롯이 흡사하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손이 마비되어가는 조각가 준구가 누드모델로 서게 된 민경과의 작업을 통해 예술과 삶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으로 보이면서 삶과 예술의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한다. '준구'는 '민경'의 몸을 통해 탐미의 과정을 탐구하는 듯이 보였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삶과 얼굴의 표정에 천착하게 된다. 골방에 갇혀 극도의 탐미만을 추구하던 예술이 삶을 통해 삼투압하는 과정에서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 즉 란 삶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영화<누드모델>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심층적으로 던진다. 주인공인 화가 에두아르와 누드모델 마리안느와의 작업은 마치 협업의 인상을 준다. 더 이상 모델은 예술가의 뮤즈로 존재하거나 예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근원을 탐구하는 동반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된 결과물에서가 아니라 창착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예술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두아르'는 나체를 모사할 생각이 없으며 포즈의 다양성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와 '마리안'느가 함께 그림에 동참해나가는 현재의 순간만을 응시한다. 예술행위를 하는 주체는 없다. 그림만이 있다. ‘에두아르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근원의 혼돈마리안느를 해체하고 싶고 해부하고 싶어 하는 자세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마리안느의 움직임이 반응만은 아니다. '마리안느'의 표정과 몸짓에서 에두아르는 그의 붓끝이 과거와 달라짐을 느낀다. 그들이 몰입하는 총체적인 예술행위는 대화였다. 어쨌든 그들은 변화한다. 무엇인가 알고 난 자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돌아갈 수가 없다. ‘에두아르는 완성품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벽에 세워 시멘트로 발라버린다. '에두아르'는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

                                                   영화<누드모델>/감독:자크 리베트/프랑스/1991


그들 영화에서 작업실 공간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작업실의 배치와 구조에 두 영화감독이 갖고 있는 예술관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는 1960년대라는 시대적 정서를 느낄 수 없는 논밭 사이에 난 시원한 길을 따라 쭉 걷다가 엽서그림 같은 호수 바로 옆에 창고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준구의 작업실이다. 달동네인 '민경'의 집도 기와집인 '준구'의 집도 아닌 마을과도 떨어진 곳에 고립된 환상의 공간으로도 보인다. '민경'의 남편이 불시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환상의 이미지가 깨지면서 불현듯 현실이 밀려오지만 예술을 고독한 작업이라고 일컫는 허름한 낭만주의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누드모델>의 작업실은 '에두아르'의 생활과 밀접한 집 안에 비교적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작업실은 연극무대를 보는 듯했다. ‘마리안느2층에서 가운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마치 다른 시공간 속에 놓여있는 연극무대에 등장하는 것만 같았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에두아르'와 '마리안느'는 서로를 탐색하고 물어뜯으며 창작과정에 참여하는 주연배우들이 된다. 관객은 허구 속의 허구인 결말 없는 질긴 연극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열린 공간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자크 리베트의 긴 영화들을 보다보면 진이 빠지는 이유가 있다.


완성품은 없었다영화<>에서도 조각상은 '민경'의 남편에 의해 부서지고 영화<누드모델>의 완성된 작품은 화가 스스로에 의해 감춰지게 된다. 예술에 창작물이 없다면 우리가 봐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정인가 결과인가. 우리가 보는 것은 과연 예술인가. 베일에 싸여진 그림. 결국 예술이란 우리가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