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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온 피트 Lean on Pete.

도마담 2018. 10. 9. 09:06

 

린 온 피트 Lean on Pete/감독: 앤드류 하이/미국/2017.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참 잔인한 영화일 수 있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한 소년이 있다. 그 소년과 얽혀있는 개인적 관계들을 하나씩 제거하거나 소멸시키고, 말하자면 소년을 굉장히 불행해보이는 상황에 놓이게 한 다음, 하나 남은 혈연을 찾아나서게 하고 그 품에 안기게 한다. 사실 그 지나난 과정으로 인해 결말부분이 관객에게 안도감을 준 것만큼은 분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다소 말끔해진 소년이 주택가 길 위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길 위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영화의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감정의 스페터클이 새로이 몰려온다. 소년은 뛰거나 걷는다. 어디를 뛰고 있고 왜 걷는 것일까.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와닿는 뭉클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 '찰리'가 곧 죽을 위기에 처한 경주마 '린온피트'와 함께 도망치다가 들판을 걷는 장면이다. '찰리'가 철이 없다거나 위험스럽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찰리'는 담담하게 경주마 '피트'와 함께 걷는다. 고모를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다시금 한 번 '찰리'가 놓인 상황을 생각해보게 한다. 엄마는 일찍 집을 나갔고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찰리'는 고모마저도 아빠와 다투는 바람에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아빠의 일시적 연인 '린'(Lean)이라는 여인도 남편에게 들키는 바람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고 아빠는 그녀의 남편에게 두들겨 맞은 후 죽음을 맞이한다. 다행히도 '찰리'에겐 쓸모없어진 경주마 '피트'가 곁에 있다. 트럭이 고장나면서 '찰리'가 '피트'와 함께 걷는 장면은 두 존재의 동일시로도 그들만의 탈주로도 보이지 않았다. '찰리'가 고립되어 밀려난 이유를 '찰리'자신도 알 수 없고 관객들도 알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걷는다. 그들이 걷는 자연의 공간을 독백의 시간이라고 얘기해보면 어떨까. 도시와는 유리되었지만 도시와 연속되어있는 자연은 어린 시절을 되새기는 휴식이다. '찰리'와 경주마 '피트'는 서로이면서 서로가 아니다. 뛰었지만 지금은 걸어야하는,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두 존재의 비슷한 운명을 감독은 자연에 넉넉히 풀어놓는다.  

 

"여긴 우리집이 아니야"

들판을 걷는 씨퀀스는 두 차례 차단된다. 그들은 길게 걷다가 퇴역군인들이 거주하는 외딴 집에 머물게 된다. 갈 데가 있고 걸어야만 하는 그들에겐 외딴 집은 그들 집이 아니었다. 그곳을 나서서 어두운 들판을 걷다가 차도를 만나고 흥분해버린 '피트'는 자동차에 치여 느닷없이 죽음을 당한다. '피트'의 집은 어디였을까. 달려야하지만 달릴 수 없었던 '피트'에겐 길 위가 집이었을까. 모든 것을 잃은 '찰리'는 홀로 여정을 지속하고 노숙자가 되어 길 위로 스며든다. 가까스로 먼길을 나서 고모와 상봉한 '찰리'는 다시 길 위에 서있다. 영화<린 온 피트>를 길을 달리고 들판을 걷는 영화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길. '찰리'는 또 달릴 것이고 때론 걸어야 할 것이다.